"사람이 숙성됐다고요?" 이만갑 보고 빵 터진 북한말 '숙성'의 진짜 의미
얼마 전 TV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보다가 정말 유쾌하게 웃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탈북민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북한에서는 사람이 나이가 들고 철이 들었을 때 "저 사람 참 숙성됐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누구를 지칭해 놀린 게 아니라, 북한에서는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가 무르익었을 때 '숙성'이라는 단어를 아주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쓴다는 말이었죠.
우리가 흔히 김치, 된장, 와인 같은 발효 식품이나 음식에나 쓰는 '숙성(熟成)'이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쓰다니요! 그 방송을 보고 저도 그렇고 출연진들도 모두 "다 같이 와~" 하고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표현이 참 오묘하게 와닿았는데요. 과연 북한말 속 '숙성'에는 어떤 깊고 재미있는 뜻이 담겨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쓰는 '성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음식에만 쓰는 줄 알았던 '숙성', 사람에게 쓰이는 이유
음식이 가장 맛있고 깊은 맛을 내려면 적절한 온도와 시간, 그리고 수많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묵은지가 맛이 들고, 메주가 잘 떠서 맛있는 된장이 되듯 말이죠.
북한에서 사람에게 "숙성됐다"고 표현할 때도 정확히 이와 같은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거나 지식이 풍부하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삶의 온갖 풍파와 시련,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인간적으로 깊고 단단하게 무르익었다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남한에서는 주로 '성숙했다'는 깔끔하고 점잖은 단어를 쓰지만, 북한에서 쓰는 '숙성'이라는 표현은 마치 오랜 시간 정성껏 빚은 장(醬)처럼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의 내공과 구수한 정감이 듬뿍 묻어나는 아주 맛깔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숙성'과 '성숙'의 미묘한 어감 차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성숙(成熟)'과 북한의 '숙성'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쓰는 '성숙': 한자 뜻 그대로 '성장하여 잘 익음'을 뜻합니다. 주로 정신적인 발전, 감정의 절제, 사회적인 어른스러움 등 조금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와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씁니다. (예: "그는 생각이 참 성숙하다.")
북한에서 쓰는 '숙성':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세월의 과정 자체에 무게를 둡니다. 누군가의 인품이나 됨됨이가 모난 곳 없이 둥글게 다듬어지고 속이 꽉 찬 어른이 되었을 때, 조금 더 친근하고 직관적인 일상 언어로 사용됩니다.
말은 비슷하지만, 북한의 '숙성' 속에는 세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사람이 비로소 '익어간다'는 낭만적이고도 묵직한 의미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3. 분단이 가져다준 언어의 또 다른 결, 그리고 소소한 즐거움
우리는 같은 한글을 쓰지만, 분단된 세월이 길어지면서 남과 북의 언어와 문화에는 미묘한 결의 차이가 생겼습니다. 북한말 중에는 이렇게 일상적인 단어에 깊은 비유를 담은 표현들이 참 많습니다.
처음에는 "사람한테 숙성이라니?" 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생각할수록 그 표현이 가진 매력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사람을 하나의 잘 빚어진 작품이나 깊은 맛을 내는 음식에 빗대어 표현한 북한식 화법은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신선한 영감을 줍니다.
4. 마무리하며: 오늘 내 주변도 맛있게 '숙성'되어 가는 중
방송 한 장면 덕분에 한바탕 유쾌하게 웃고, 말 한마디가 주는 언어의 맛과 세월의 깊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 혹은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참 세월에 잘 익어가고(숙성되어) 있구나" 하고 따뜻한 미소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비록 남과 북의 단어 선택은 조금 다를지라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멋지게 익어가는 것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남과 북이 똑같이 따뜻할 것입니다.